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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선에 마지막 남은 간이역이자 직선화 공사가 끝나면 곧 폐역이 될 청소역.


1929년 처음 영업을 개시하여 90년 넘는 세월 기차가 오고 다니는 이 역 근처에는 증기기관차에 연료가 되는 물을 공급해주던 급수탑이 남아있습니다. 물론 다른 역의 급수탑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거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아도 그럭저럭 관리가 되고 있는 모습입니다만, 청소역의 급수탑은 철길 옆에 그냥저냥 방치된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보령시 청소면 진죽리 464-3번지 일원. 작은 도로가 있었지만, 현재는 진죽천 하천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주변 일대의 공사가 진행중이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면소재지를 지나는 큰 도로에서도 가려지는곳이 없어 급수탑의 모습이 잘 보이고 있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급수탑 구경을 하고 가기로 합니다.



바람은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만 사진만 놓고 보면 평화롭게 보입니다.


멀리 보이는 오서산과 진당산 자락 그리고 낡은 철교와 어우러진 뭉게구름이 전형적인 평화로운 시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래 이 자리는 도로가 있었던 자리입니다만은 하천 정비공사가 진행되며 죄다 철거가 된 상태입니다.



대천에서 청소방향으로 들어오는 길. 


진죽천 위에 놓인 야현교를 건너서 바로 우측으로 빠지면 됩니다만, 공사가 진행중이라 기존 도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반대편 주택가로 가는 길 역시 통제되었는데, 출입구가 없어진지라 그쪽으로는 아예 가교를 놓아주었습니다.



도로 위에 깔려있다가 걷어내어 결국 건설폐기물이 된 콘크리트와 그 뒤로 급수탑이 보입니다.


사실상 수인선 협궤철도를 제외하고 대한민국 철도에서 증기기관차가 사라진게 1967년입니다. 이후 철도청 시절 관광열차로 증기기관차를 도입하여 잠시 운용하기도 했었습니다만, 그 운행마저 중단된게 대략 20년 전 일입니다. 여튼 장항선 철길 옆에 남은 낡은 급수탑은 사실상 제 기능을 잃고 방치된지 50년이 넘었습니다.



낡은 급수탑과 낡은 철교. 그리고 낡은 전신주와 낡은 가로등.

그 아래 놓인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뒤섞인 건설폐기물. 


누가 보면 폐선된 철로 옆으로 방치된 구조물들로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아직 폐선되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멀리서도 찾아오리라 생각됩니다.



청소역 급수탑의 모습입니다.


다른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급수탑들이나 수원역처럼 큰 역에 있던 급수탑에 비하면 매우 작은 수준입니다만, 그래도 급수탑은 급수탑입니다. 빨간 적벽돌에 원통형으로 지어진 급수탑의 몸체와 상부로 올라 갈 수 있는 사다리가 존재합니다. 다만 보존 상태가 그리 좋지는 못하네요. 주변으로도 폐기물들이 널려있고요.



급수탑을 지나면 진죽천을 지나는 철교 아래로 난 작은 도로가 존재합니다.


철교 자체도 매우 오래되었고, 어디까지나 인력으로 파서 만들었던 도로이기에 제한높이는 매우 낮습니다. 1.9m면 1톤트럭도 버겁습니다. 어지간한 승용차들만 지나다닐 수 있고 키가 큰 사람들 역시 머리를 굽히고 지나가야만 하는 높이입니다. 그렇지만 꽤 오랜 세월 지역 주민들은 문제 없이 이용한듯 보이더군요.


이러한 도로 역시 곧 장항선 철도가 청소면 소재지가 아닌 저 멀리로 직선화되어 지나가게 된다면 사라질 풍경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사진으로나 남겨놓으면 더이상 이 위로 기차가 지나다니지 않게 되고, 철교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 추억을 찾아 오는 사람들에게 시간이 지나도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겠죠. 



철교 아래로 들어가 봅니다.


1929년 장항선 광천-남포구간의 개통과 동시에 사용이 개시되었던 낡은 철교. 저보다도 나이가 훨씬 많고, 어지간한 마을 주민들보다도 나이가 훨씬 더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여러모로 일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나름대로의 근대문화유산입니다. 그저 노후교량이나 빨리 헐어버려야 할 다리로 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철교를 건설했던 사람들도, 진죽천을 지나는 이 철교 위를 증기기관차를 타고 지나던 그 당시의 사람들도. 청소역 급수탑에서 증기기관차에 물을 보급해주던 역무원도 90년이 훌쩍 지난 2020년에 이 자리에서 자신들의 일상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으리라 상상이나 했을까요. 여러모로 세월은 흘렀고 낡은 철교도 퇴역을 앞두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일제강점기 시절에 지어진 철교입니다. 물론 일본에도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철도시설물이 개량과 보수를 거쳐 사용중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보니 일본의 철도 동호인들이 청소역과 함께 주변에 있는 이런 시설물들을 찾아 답사했던 흔적도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면 심심찮게 나오곤 합니다.



우거진 수풀. 낡은 철교. 빠르게 지나가는 뭉게구름.


평화로운 시골. 곧 용산을 향해 달리는 상행 무궁화호 열차와 익산을 향해 달리는 하행 무궁화호 열차가 청소역에서 교행을 하게 됩니다. 한 열차가 역을 향해 철교를 건너는 모습과, 한 열차가 역을 지나 철교를 건너는 모습도 기다렸다가 함께 담아가기로 합시다.



철교쪽에서 급수탑을 바라보니 역광입니다.

낡은 급수탑. 그리리고 공허한 주변 사물들과 얽혀 복잡한 분위기를 연출해냅니다. 


아이폰11pro를 사용한지 이제 한달 하고 조금 지났지만 여러모로 아이폰 카메라는 별다른 보정 없이도 감성적인 사진의 촬영이 가능한듯 합니다. 물론 스펙만 놓고 본다면 훨씬 뛰어난 휴대전화가 많습니다만, 아이폰 감성에 젖어드는 느낌입니다. 조금의 효과만 준다면 마치 좀비영화 배경으로 써도 될 분위기네요.



낡은 급수탑을 감싸고 있던 정체불명의 철제 띠는 이미 풀려버려 다른 구조물에 걸쳐져 있습니다.


나름대로 청소역 주변은 공원화를 시켜놓고 잘 관리를 합니다만, 급수탑의 구조물들은 매우 위태로운 상태로 놓여져 있습니다. 물론 다른 급수탑에 비한다면 규모도 작고 역사적 가치도 덜하겠지만, 충분히 관광자원화 시켜놓은 청소역과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의 촬영장소가 되기도 했던 청소면 소재지 자체가 나름 관광자원화 되고 있기에 이 급수탑 역시 본래의 모습대로 복원하여 주변을 공원화 한다면 나름대로 활용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튼 현재 급수탑이 소재한 부지의 등기부 등본을 확인해본 바 해당 토지는 통일교 재단에서 소유하고 있더군요. 국유지가 아닌지라 돈만 있다면 매입하여 저라도 보존을 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급수탑 아래 작은 구멍. 그 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만 쓰레기가 가득합니다.


다른 지역의 급수탑들은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거나 공원화가 되어 쾌적한 환경에서 보존되고 있습니다만, 주변으로 쓰레기가 뒹구는 청소역 급수탑의 현 상황을 보면 매우 안타깝기만 합니다. 물론 주변으로 하천정비사업이 진행중인지라 당분간 근처 지역이 변하는 모습을 본다면 일말의 희망이라도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낡은 급수탑 꼭대기에는 피뢰침도 존재합니다.


지금도 근처에 급수탑보다 높은 건물이 딱히 존재하지는 않습니다만, 아마 급수탑이 지어지던 그 시절에는 더욱이 없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 단 한번이라도 번개가 피뢰침에 맞았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꼭대기의 피뢰침도 급수탑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광각으로 바라본 급수탑과 철교.


급수탑 앞에 빨간 깃발이 꼽혀있습니다. 보상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깃발인데, 주변 건물들은 이미 하천정비사업과 마을에서 나오는 길을 큰 도로와 직선으로 연결하기 위해 헐려버렸지만 부디 급수탑이 헐리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로드뷰를 확인해보니 작은 텃밭 옆으로 건설폐기물이 있던 자리가 작은 도로였습니다.


텃밭 역시 하천정비사업으로 곧 정리되겠죠. 그렇게 곧 이 철교를 통과하게 될 기차를 기다렸습니다.


저 멀리 굉음과 함께 기차가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디젤기관차에 평범한 무궁화호 열차라지만 사진으로 남겨보기로 합니다. 하필이면 열차가 지나가는 시기에 구름이 태양을 가려버려 조금 어두운 환경에서 사진을 촬영해야만 합니다. 여러모로 열차는 기다려주지 않을테고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상상하고 있던 사진을 아이폰으로 담아보기로 합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렇게 용산을 향해 달려가는 상행 열차는 철교와 급수탑을 지나갔습니다.


별다른 보정 없이 채도만 좀 더 더해줬습니다. 푸른 하늘과 디젤기관차와 무궁화호 객차의 색이 좀 더 강하게 보이는 효과를 얻었습니다. 뭉게구름은 빠르게 지나가고 기다리던 무궁화호 열차마저도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그 자리에 남은것은 90년 넘는 세월을 버텨왔던 철교와 50년 넘게 방치된 급수탑 말고는 없습니다.


상행 열차가 먼저 청소역에 도착하여 하행 열차를 기다립니다. 시간을 잡아먹는 주된 요인이 이러한 교행입니다. 대략 2~3분이 지나고 하행 열차도 청소역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렇게 청소역에서 만난 두 열차는 각자 왔던 길을 바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갑니다.



하행 열차가 철교를 지나는 모습은 조금 멀리서 촬영하였습니다.


철교 그리고 급수탑. 그리고 차.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저. 그렇게 청소역을 지나 힘차게 익산역을 향해 달려가는 무궁화호를 보내줍니다. 뭉게구름도 열차도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차 역시 치워진다면 역시나 이 자리에 남는것은 철교와 급수탑 말곤 없습니다.



멀리 떠나는 열차를 뒤로하고 저도 제 갈길을 가기로 합니다.


오랜만에 좋은 사진 건졌네요. 카톡 프로필사진을 이 사진으로 바꿨습니다. 급수탑을 보러 왔다가 좋은 사진을 건져가게 되었네요.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비록 역사적인 가치는 떨어진다 한들 증기기관차가 이 철길을 타고 달렸다는 유일한 증거물인 청소역의 급수탑이 부디 오랜 세월 유지보수를 거쳐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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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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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대학교를 구경하고, 제주도 서쪽의 함덕해수욕장을 목적지로 찍고 가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자동차전용도로가 잘 뚫려 있었습니다.


해안가를 빙 돌아가는 도로들은 최소 4차선 이상으로 보이더군요. 여러모로 차를 타고 다니기에도 나쁜 환경은 아닙니다. 선형도 나쁘지 않아 120km/h 이상 밟는 차들도 보이더군요. 물론 이런 구간에는 과속단속카메라도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길 귤을 샀네요.


뭐 제주도에 널리고 널린게 귤 직판장인데, 지나가던 길에 들어가 구입했습니다. 레드향 한박스를 택배로 받기로 하고 돌아가는데 가면서 먹으라고 귤을 꽤 많이 주시더군요. 앉은 자리에서 다섯개를 까먹었습니다. 며칠 걸려서 받는 귤보다 확실히 현지에서 수확한 바로 그날 먹는 귤은 맛부터가 달랐습니다.



함덕해수욕장에 왔네요.


합덕이 아니라 함덕입니다. 여튼 에메랄드빛 바닷물과 거친 바람과 함께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들은 마치 제주도가 아닌 먼 섬나라에 온 기분입니다. 서해 동해 남해 바닷물보다 훨씬 더 깔끔한 청정 제주의 바닷물을 보니 제 마음도 편안해지는 기분입니다.





그냥 사진만 봐도 평온해지는 그런 느낌의 풍경이 계속 펼쳐집니다.


서귀포는 완연한 봄날씨였지만, 이곳은 강한 바람과 함께 다시 패딩을 찾아 입을 수준의 날씨더군요. 같은 제주도 안에서도 계절이 다름을 실감합니다.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 주차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렌터카들이 있었습니다.


죄다 스쿠터 혹은 렌터카를 타고 온 연인들. 저만 혼자였습니다. 해수욕장이 개장한 시기도 아니고, 여행 비수기임에도 그럭저럭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극성수기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까요.



비수기의 해수욕장은 여기저기 공사의 흔적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스타벅스도 있네요.


제주도내에만 총 22개의 스타벅스가 존재합니다. 인구 110만의 광역시인 울산에 26개의 점포가 있습니다만, 인구 50만 수준의 제주도에 점포가 22개 있다는 사실은 인구대비 스타벅스가 꽤나 많다는 이야기겠죠. 여튼 제주도에서 스타벅스는 꽤 유명한 관광지만 가더라도 하나쯤은 보이는 존재였습니다.



모래사장의 모래가 날려 유실되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차양막을 깔고 모래주머니로 눌러놓았습니다.


모래의 유실을 막고, 모래바람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이런 조치를 취하는듯 보였습니다. 뭐 지나다니기에는 푹푹 발이 빠지는 모래사장보다 훨씬 더 좋긴 합니다만, 모래주머니 덩어리만 보이닌 조금 아쉽기만은 합니다.



모래주머니 덩어리를 지나니 올레길 19코스가 보입니다.


김녕에서 조천까지 이어지는 올레길 19코스는 함덕해수욕장을 그대로 지나갑니다. 함덕해수욕장 말고도 신흥해수욕장을 지나가긴 합니다만, 신흥해수욕장보다는 함덕해수욕장이 훨씬 더 크지요. 적막한 올레길을 노부부만이 걷고 있었습니다.



해풍을 맞고 자라난 풀들 뒤로 고운 모래와 어우러진 검은 현무암들이 보이네요.


자칫 다칠 수 있는 돌이 많은 공간은 해수욕에는 적합하지 않은 환경입니다만, 상대적으로 날카롭지 않은 현무암이니 굴 껍질과 날카로운 암석들이 많은 서해안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입니다.



대충 이정도 보고 넘어가기로 합니다.


슬슬 오후를 향해 갑니다. 이제 제주 시내로 이동하여 시내 근처에서 시간을 떼우고 렌터카를 반납한 뒤 공항으로 가야 합니다. 밤 비행기로 돌아가야만 하는 당일치기 여행의 한계입니다. 다만 1박2일 여행이였더라면 조금 더 여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제주시내 방향으로 차를 돌립니다.



다음 목적지는 넥슨컴퓨터박물관입니다.


이곳 역시 제주시에서 천백고지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었네요. 여튼 넥슨컴퓨터박물관은 지난 2013년 제주시 노형동에 문을 연 뒤 대략 7년째 운영중인 박물관입니다. 눈으로만 보는 박물관이 아닌 직접 체험을 할 수 있는 박물관을 표방하고 있습니다만, 8천원의 입장료 때문에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후기를 보면 역시 돈슨답다는 내용, 돈이 아깝다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만은 90년대생은 50% 할인해서 4천원에 관람을 할 수 있고 나름 세대 코드에 맞다고 하기에 일단 구경을 위해 가 보기로 합니다.



역시 돈 많은 IT기업에서 운영중인 박물관인지라 심플하고 돈좀 쓴 것 같은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넥슨 산하의 엔엑스씨엘과 네오플 사옥 역시 박물관 옆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 당시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제주사옥을 건설하고 제주도로 본사를 옮긴데 이어 유수의 IT기업들이 제주도로 본사를 옮기거나 사옥을 짓는 등 제주행을 결정했지요. 넥슨의 계열사들 역시 그런 분위기에 힘입어 제주도로 옮겨왔습니다.





박물관 입구. 문이 열리고 바로 매표소가 존재합니다.


매표소에 가니 별다른 얘기 없이 4000원을 받더군요. 혹시 알고 오셨냐고 묻길래 90년대생이라 할인해주는게 아니냐 물으니 지하 1층이 3월까지 공사에 들어가 관람이 불가하여 절반만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음.. 뭐 여튼 그렇다고 하니 한바퀴 쭉 둘러보기로 합니다.



종이로 된 입장권 대신 노란 팔찌 형태의 입장권을 손목에 걸어줍니다.


물론 박물관 내에서 입장권을 확인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만, 육지로 돌아올때까지 이 입장권을 계속 팔목에 두르고 있었습니다. 차에서도 아니고 늦은 밤에 집에 돌아와서 풀어버렸으니 말이죠.



명색이 게임박물관이 아닌 컴퓨터박물관이니 컴퓨터의 역사부터 다루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마우스의 모태가 된 최초의 마우스.



지금의 키보드의 모태가 된 타자기.



비프음에서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풍부한 소리를 내기 시작한 사운드카드.



그리고 PC통신과 인터넷. 지금의 SNS까지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 이야기는 5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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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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