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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근 한달 1일차 이야기로 버텨냈으니, 2일차 이야기로 열심히 버텨봅시다.



잠은 그래도 잘 잤습니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면 어쩔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잠은 잘 자서 다행입니다. 창살 너머로 햇빛이 비춰지길래 벌써 아침인가 하고 시간을 보니 4시 57분.. 그렇습니다. 동경과 서울 표준시로 쓰는 시간은 북해도에서 느끼기엔 너무 느리기만 합니다.


바로 위에 붙은 블라디보스토크의 표준시간이 1시간 더 빠르니.. 말 다했죠.


호텔 뷔페에서 조식을 먹고 오늘 하루도 힘차게 돌아다니기 위해 거리로 나와봅니다.


도요타의 원박스 타입 승합차 하이에이스. 나름 하이루프 모델에 글라스밴입니다. 국내에선 봉고3 코치 이후로 사실상 사장된 원박스 타입의 승합차입니다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잘 만들어서 팔아먹고 있습니다. 심지어 수출까지 방방곳곳에 하는지라 동남아나 북미지역에 가더라도 쉽게 볼 수 있는 차량이지요.


상용차 그것도 사람을 태우는 승합차보단 밴 모델이 상대적으로 옵션이 후달리고 선택의 폭이 좁습니다만, 하이에이스는 승합이나 화물적재용 밴모델이나 딱히 다른게 없어보입니다.



평범한 일요일 아침. 바바리 코트를 입고 출근길에 오르는 리얼충들..

그리고 저처럼 홀로 여행을 다니는 여행객들만 보입니다


홋카이도 레일패스를 발급받을 당시 여행자센터에서 미리 지정석 발권을 해두지 않아 일찌감치 역에 가서 발권을 받기로 합니다. 신치토세공항역과 삿포로역에 외국인 여행객을 위한 여행자센터가 존재합니다만, 아직 여행자센터가 문을 여는 시간은 아니던지라 결국 일반 발권창구에서 오타루행 표를 발권받았습니다.



홋카이도 레일패스를 건네고 엉터리 일본어+영어로 오타루에 가고싶다 얘기했습니다.


번역기도 쓰고 이래저래 의사를 전달하니, 표를 발권해주는 스시남 아저씨가 잘 알아듣고 표를 발권해 줍니다. 10시 13분에 삿포로역에서 출발하는 열차편입니다. 약 한시간정도 시간이 남는지라 삿포로역 근처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홋카이도 대학교 구경을 가 보도록 합니다.



호텔이 남쪽 출구 방향에 있고, 번화가는 다 남쪽이라 삿포로역 북쪽출구로 나오는건 처음입니다.


남쪽 출구에 비해서는 조금 한산합니다만, 그래도 사람도 지나다니고 택시도 지나다니고, 버스도 지나다닙니다. 어느 나라던지 일요일 아침이 가장 한산하지 않나 싶네요. 우리나라만 봐도 교회에 아침일찍 나가는 사람이나 일요일에 출근을 하는 경우가 아닌이상 일요일은 편히 늦잠을 자는게 대부분이니 말입니다.



대학교로 가는 길. 삿포로역 북쪽출구에서 약 1km를 걸어가야 합니다.


걸어가던 길에 렌트카 사무실에서 렌트카를 빌리는 가족들과 대학생 무리를 보았습니다. 카와이한 처자가 전반적인 차량 상태를 점검해주고 대여자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더랍니다.


즉흥적인 이번 여행에서 레일패스 대신에 렌터카를 타고 가는걸 어느정도 고려하긴 했었습니다만, 타국에서 그것도 통행방향이 반대인 국가에서 운전을 굳이 해야하나 싶은 마음에 레일패스로 결정했답니다. 중 장기적으론 훼리에 스파크를 싣고 일본 일주를 해보는게 목표이긴 합니다만, 그게 뭐 쉬운 일인지요..



홋카이도 농업대학을 전신으로 1918년 설립된 북해도 지역의 국립 종합대학입니다.


일본의 제국대학은 우리내 지거국과 비슷하게 볼 수 있지만, 1886년 공표된 일본의 제국대학령에 의거해 설립된 대학들을 의미합니다. 국가에서 법까지 만들어서 엘리트를 육성하기 위해 세운 대학이고, 현 시점에서도 다른 국립대학이나 명문 사립대보다 훨씬 더 우수한 입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타루행 열차가 오기 전까지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명문대학교 구경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시민을 위한 무료 법률상담


1회성 행사가 아닌지라 정문 앞에 안내판을 만들어 둔 모습입니다. 법학부 건물 101호에서 진행되는 무료 법률상담은 민사 형사를 아우르며 더 나아가 등기나 공탁과 같은 세분화된 분야별로 자세한 상담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낡은 우체통이 덩그러니 서 있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못하는게 없는 우리 홋카이도 대학 학생들이 열심히 편지를 적어서 이 우체통에 넣곤 했겠죠. 물론 지금은 이메일이니 메신저니 쉽게 이야기를 전할 수단이 많다보니 일본 역시나 편지를 쓰는 인구는 적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집에 오던 길에 동네 우체통을 새로 도색하고 보수작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봤는데, 일본은 최소한의 도색작업도 없이 우체통을 유지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4월 아니 5월까지도 눈이 내리는 동네이다보니, 저렇게 구석진곳엔 눈이 쌓여있습니다.


새 싹이 트는 공간도 있지만, 저렇게 그늘지고 구석진 곳엔 눈이 쌓여있는게 정말 일상처럼 보여집니다. 뭐 6월을 바라보는 지금 시점에서는 이미 다 녹았고 잔디까지 잘 자라있겠죠.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학생들도 보기 힘듭니다. 관광명소임에도 관광객도 보기 힘듭니다.


일본으로 치자면 새학기가 시작된지 약 열흘정도 지난 시점인지라 새내기 대학생들이 학교 이곳저곳을 둘러보려고 아침일찍 돌아다닐법도 한데, 학생도 관광객도 보기가 힘듭니다.



휴식장소입니다. 뛰지 말고 걸어주세요.


그렇습니다. 간간히 조깅을 하는 아저씨들이 보이고 자전거가 지나다닙니다만, 사색을 즐기고 기분전환을 즐기는 학생들을 위해서 걸어달라고 합니다. 징기스칸 파티라고 교내 잔디밭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일이 흔했다고 하는데 중국인 관광객들이 고기를 구워먹고 쓰레기를 무분별하게 버리고 가는 바람에 최근에는 보기 힘든 광경이 되었다고 그러더군요.



간간히 눈이 쌓여있고, 키다리 나무들만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서있습니다.


학교 자체가 미국 메사추세츠 농학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지라, 마치 미국의 평화로운 공원에 온 느낌입니다. 저기에 리트리버 한마리 풀어놓고 돗자리 깔고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만 있다면 딱 미국인데요..



실개천이 흐릅니다. 인위적으로 만든 인공하천입니다.


수질은 그냥저냥.. 간간히 쓰레기가 보이긴 하다만 아주 더럽거나 그러진 않습니다. 



분명히 들어가지 말라 써있는데 들어가는 스시남 아저씨.


들어가서 발을 닦고 계십니다. 개똥을 밟으신건지 아니면 단지 하지 말라고 하길래 해보고 싶으셔서 들어가신건진 모르겠습니다만, 일본이라고 철저한 시민의식을 가진건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뒤에서 조심스럽게 지켜본 바 물장구를 치는것도 아니고, 그냥 발만 닦고 계십니다.



그렇게 작은 하천을 따라 학교 구석구석으로 들어가 봅니다.


16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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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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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시계탑 1층에는 시계탑의 역사를 확인 할 수 있는 역사관이 있습니다. 비록 한국어 설명은 빈약하지만 그래도 간간히 간단하게 작성되어 있더군요. 간단하게 몇가지만 추려서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계탑의 연혁


시계탑은, 현재의 북해도대학의 전신인 삿포로 농학교의 연무장으로서 1878 년에 세워졌습니다. 연무장은, 강의실, 표본실, 실내체육장, 각종 행사장의 기능을 함께 갖춘 건물이었습니다.

1903 년부터 1940 년대 초까지는 교육단체의 사무소, 부속 도서관, 문화 활동의 장소로 이용되었고, 제 2차 세계대전 중인 1943 년부터 전후의 1948 년까지는 군용시설, 각종 민간단체 사무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후 1950 년부터 1966년까지 시립도서관으로 사용되었고, 도서관 이전에 따라 1967 년에 복원 공사를 하였습니다. 1970 년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일본 구 제국대학 중 한군데인 북해도대학의 전신, 삿포로 농학교의 연무장 건물이던 우리의 시계탑은 1878년에 세워졌으며, 여러 용도변경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합니다.


근 150년 가까이 된 서양식 건물인 우리의 시계탑은, 학교 캠퍼스 내 부속건물이던 셈이죠.



그 외에도 북해도 대학의 전신인 개척사 가학교와 여학교등의 소개도 이어집니다.


북해도 개척사의 가학교로 1872년 개교한 초기의 학교 졸업생들은 북해도 개척과 관련된 사업에 의무적으로 종사를 하게 했답니다. 일본의 북해도 개척 당시 나름대로 큰 일을 했던 사람들은 이 가학교 출신이겠지요.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 두번째로 여학교를 개교하기도 했답니다.


다만 가학교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폐교가 되었고, 약 2년 뒤 삿포로시로 자리를 옮기며 삿포로 학교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개교를 합니다. 지금의 시계탑이 있는 자리 일원이 바로 삿포로 학교가 옮겨온 부지입니다.



1876년 3월. 농과대학이 개설하며 본격적으로 삿포로 농학교라는 명칭으로 출범합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농과대학의 학장이였던 미국인들을 교사로 고용하면서 본격적인 근대 고등교육기관으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미국인들이 당연히 메사추세츠 농과대학에 근무했던 교직원들인 만큼 당시 미국의 농업기술이나 메사추세츠 농과대학의 커리큘럼을 그대로 가지고 오기도 했답니다.



개교 당시 삿포로 농학교의 모습



150년의 세월을 버티며 우뚝 서있는 연무장. 시계탑 건설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개교 당시 고용된 미국인 교장 클라크는 나름대로 학생들이 거주하는 기숙사라던지 연무장 강당 등 농학교의 시설 확충에 관심이 많았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부임한 휠러 교장대리가 구체적인 연무장을 포함한 여러가지 학교 건물의 건설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고 하네요. 


초창기 계획안 상으론 연무관 건물은 종루가 달린 2층 벽돌건물을 구상하고 있었지만, 결국 계획의 축소로 인해 2층 목조건물로의 건축이 결정되었다 합니다. 그렇게 1878년에 5월에 최종적인 건축허가가 나왔고, 그 해 6월 착공에 돌입합니다.



그렇게 농학교 연회장은 착공 4개월만에 완공되었고, 대학 본관으로의 역활도 겸했다 합니다.


다만, 처음 농학교 연무장 건물엔 시계가 없었습니다. 당시 개척장관이던 쿠로다 기요타카가 연무장 종루에 시계를 달아보라는 명령을 내려 탑시계를 장착하게 된 일이죠. 농학교 교장 직무대리인 휠러는 미국의 하워드社에 시계를 주문하였고 1879년 6월에 주문했던 시계는 도착했습니다.


다만, 시계 사이즈가 연무장 종루보다 훨씬 큰지라 다른 건물에 대신 설치를 하는 방안이 고려되었고, 결국은 교장대리 휠러의 설득 끝에 연무장 종루를 뜯어 고쳐서 탑시계를 달게 됩니다. 그렇게 1881년 8월 12일에 시계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하는군요.


P.S 쿠로다(구로다) 기요타카는 일본의 2대 총리를 역임한 정치인. 우리에겐 운요호 사건을 매개로 한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의 주역으로 이름이 알려진 인물.



당시 농학교의 교육과정은 메사추세츠 농대의 커리큘럼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고로 100%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였고, 당시 일본 최고의 영문학자도 배출했다 하는군요. 여튼간에 이게 일본인이 쓴 영문인지 미국인이 쓴 영문인지 그냥 봐선 모를 정도로 아름다운 필기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농학생들은 오전에는 4교시의 학습과 1교시의 복습시간, 오후에는 현장실습 위주의 수업을 받았다고 합니다. 요즈음 학교와 별 다를 것 없이 운동회 그리고 학예회까지 진행했다 하는군요.



札愰農學校創基25年祝典 (찰황농학교창기25년축전)


농학교 설립 25주년 축전 당시 사진. 재학생 그리고 교직원들이 지금의 시계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명치(메이지)34년이면 서기 1901년이죠. 쇄국정책을 펼치던 조선과 달리 서구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이던 일본은 이 시절 사진 기록들도 우리나라보단 꽤 많이 남아있습니다.




당시 농학교 모형.


셔터스피드가 영 좋지 못했던지라.. 강의동과 관측대 그리고 실습을 위한 공간들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고층 빌딩으로 뒤덮인 시계탑 근처입니다만, 그시절엔 작은 단층 가옥들 위주였네요.



보수공사 당시 떼어낸 건축 초기 자재들 역시 폐기처분 하지 않고 잘 보관하여 전시중입니다.



150년의 세월을 삿포로 시민들과 함께했다 보니 여러 문학작품 그리고 음반속에서도 시계탑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시계 기술자이던 이노우에 키요시씨는 96년 99세의 나이로 타계하기까지 약 반세기동안 시계탑 유지보수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삿포로를 대표하는 시계탑은 많은 시민들의 보살핌으로 오랜 세월 유지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2층으로 올라갑니다. 옆에는 장애인용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건물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엘리베이터 박스를 만들었더군요. 몸이 불편한 사람일지라도 손쉽게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작은 공연장을 바라보고 있는 나무의자.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시계탑의 구조와 구동 원리를 설명하는 영상이 상영중입니다.



족히 30년은 넘어보이는 영상이지만, 관람객들은 집중하면서 아주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시계부분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


추를 달고 있는 로프가 보입니다. 물론 150년의 세월을 함께한 로프는 아닐테구요.. 분명 노후화가 되었을테니 못해도 대여섯번 이상은 교환해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작은 모형으로 커다란 시계의 구동모습을 똑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은 톱니가 움직이면서 큰 톱니도 움직이고 그렇게 로프를 감고 풀어가면서 시계바늘은 돌아갑니다.



시계탑 관람을 하고 나오니 4시에 가까워 지더군요.


고로 다시 호텔로 돌아갑니다. 호텔에서 잠시 쉬다가 또 열심히 돌아다녀야죠.


7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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