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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폐교탐방 시리즈.


부실경영 혹은 이사장의 횡령등으로 문을 닫은 대학교를 전문적으로 탐방하는 블로거는 아마 저 말곤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고전짤을 돌고 돌게 만들어주신 그 분들도 계시긴 하다만, 비교적 최근에 이러한 폐교들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저 혼자라 자부 할 수 있습니다.


뭐 제가 올렸던 글에서 같은 시기에 학교 앞 같은 원룸에 사셨던 이웃분들이 댓글로 조우하던 경우도 있었고 여기저기서 폐교들의 근황이라며 불펌되고 있습니다만 가져가셔서 꼭 출처정도는 표기를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 외에도 명신대학교와 성화대학은 수년 전에 직접 방문했었지만, 남은 사진이 없네요. 


여튼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논산시 연산면에 소재한 '한민학교'입니다. 한민대학교라고도 잘 알려진 이 학교는 사실 정식 대학이 아니라 4년제 학력인정 학교였습니다. 정식 4년제 대학처럼 홍보를 하다가 시정명령을 받았던 전력이 있고, 여타 다른 폐교들처럼 사학비리로 망해버린 학교라지요.


뭐 다른 폐교들의 경우 주변 대학에서 편입학이라도 잘 받아줬지만, 한민학교의 경우 정식 4년제 대학도 아니던지라 편입학에도 큰 어려움이 따랐다고 하더군요.



논산 초입(논산대교)에서 딱 15km


논산에서 계룡,대전방향으로 1번국도를 타고 가다가 연산면 소재지로 들어오면 한민학교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2013년 8월 31일자로 폐교된 학교입니다만, 폐교 이후로 약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학교의 소재를 알리는 이정표는 굳건히 서 있습니다. 딱히 찾아서 갈 사람도 없는데 말이죠.



평화로운 연산면 소재지 끝자락. 한민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은 매일같이 드나들던 시내겠지요.


물론 사소한 먹을거리를 사러 나가더라도, 장을 보러 나가더라도 학생들은 버스 아니면 기본요금 이상 나오는 택시비를 지불하고 나갔으리라 생각됩니다. 애초에 정원이 그리 많지도 않던 학교였고 암만 기숙사가 있고 학생들이 있다 한들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으리라 여겨집니다.



지방도를 타고 양촌면 방향으로 가다 보면 우측에 학교를 알리는 돌간판이 보입니다.


석재 가격이 한두푼도 아니고, 사실상 잘게 부수어 골재로 사용하지 않는 한 재활용도 불가한 품목인데.. 폐교된 학교 치고는 너무나도 깔끔하고 아름다운 돌간판이 입구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간판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방향을 선회하면 정문이 떡하니 보이더군요.



"한민족을 안고 세계로"


학교법인 한민족학원이 세운 개신교계열의 학교입니다. 황산벌 캠핑장 홍보용 현수막에 가려져 있습니다만, 하나님이 주인이신 대학이라는 문구도 함게 적혀있다고 하는군요. 보통 폐교된 대학들을 보자면 역사와 전통이 짧고 돈벌이를 위해 남발한 대학들이 대부분입니다만, 한민학교의 경우 대학치고는 나름대로 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였습니다.


1959년 미국의 선교사가 세운 대전신학교가 모태가 되어 한성신학교라는 이름으로 83년에 4년제 학력이 인정되는 학교로 자리잡은 뒤, 1989년 대전 시내에서 현 위치로 학교를 옮겨왔다고 합니다. 나름 신학과 말고도 다른 학과들이 존재하는 한민학교라는 이름은 2000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하는군요.


P.S 차라리 대전에 계속 있었더라면, 학교가 망하더라도 부동산 처분이 용이했을테고 정식 4년제 대학으로 신분상승 또한 가능하지 않았을까..



한민족학원의 동판은 잘 살아있습니다만, 한민학교 부분은 무언가로 가려두었습니다.


옛 아시아대학교처럼 정문만 요 앞에 내려와 있을 뿐, 마을의 진입로로도 활용되는 그런 도로입니다.



그래도 시골 부락이 소재해 있고, 대학이 존재하니 버스가 다니긴 합니다. 


논산시의 316번 시내버스가 이 노선을 운행하는데, 종점인 한민대까지 가지 않고 바로 아래 신양1리 정류장을 사실상 종점으로 보고 휴차합니다. 한민대 언덕배기까지 올라가봐야 아까운 연료와 기사아저씨의 노동력만 손실되고 탈 사람도 귀신 말고는 없는데 말이죠. 가뜩이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음산한 학교 앞에서 누가 쉬고싶겠습니까.



학교로 올라가는 길목. 평화로운 들판과 농촌마을이 존재합니다.


어느정도 가다보면 민가와 전답도 죄다 사라지고, 관리가 되지 않아 개판인 산을 구불구불 올라가네요.



열심히 올라왔습니다.


버스정류장은 왜이리 깔끔하게 지어둔걸까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이미 덩쿨에 점령된지 오래입니다. 버스를 탈 사람이 있어야지요. 귀신말고 누가 버려진 학교 하나 있는 저 산중턱에서 버스를 타겠습니까.



버스정류장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도 꽤나 멉니다.


약 300m 이상 내려와야 존재하는 버스정류장. 그 버스마저도 하루에 여섯번 왕복하는게 전부입니다. 막차가 5시인지라, 다섯시가 넘어가면 그냥 뭐 무서운 산길을 걸어내려가던지 택시를 타야했겠지요.



오토캠핑장이 학교 부지 전체를 사용하는 줄 알았습니다만, 입구 근처 일부 부지에 존재합니다.


2010년 로드뷰를 확인해보니 본래는 학교 부지 앞 보도블럭이 깔린 공원이였습니다. 뭐 학교도 사실상 버려지고 누군가에 의해서 캠핑장으로 재탄생되었더군요. 일요일 오후임에도 오토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좀 있었습니다.



캠핑장을 뒤로하고 길을 따라 쭉 올라가 봅니다.


한반도 모양의 돌간판과 관리가 되지 않아 수풀이 무성한 길을 따라 들어갑니다. 사진상으로는 그저 그렇습니다만, 혼자 들어가려 하니 등골이 오싹합니다. 무섭습니다. 카와이한 처자라도 데려왔으면 무서워도 손이나 잡고 들어갈 수 있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하니 혼자 들어가야 합니다.



이게 길인지.. 싶습니다. 보도블럭이고 나무고 잡초고 이미 경계를 잃은지 오래.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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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도리

만 31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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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걸어서 고로가쿠 공원에 도착합니다.


2016/04/14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 공항에서 있었던 일

2016/04/16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2) 신 치토세 공항 입성!

2016/04/17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3) 레일패스 발권, 삿포로역으로!

2016/04/20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4) 네스트 호텔 삿포로에키마에, 마츠야에서의 점심

2016/04/23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5) 삿포로 시 시계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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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4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8) 홋카이도 구 도청사(아카렌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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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0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0) 홋카이도 구 도청사(아카렌가) - 完

2016/05/11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1) 오도리(大通り) 공원

2016/05/13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2) 삿포로 TV타워

2016/05/19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3) 오덕빌딩, 다누키코지 상점가 - 1

2016/05/23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4) 다누키코지 상점가 -2, 1일차 마무리

2016/05/27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5) 2일차 아침, 국립 홋카이도 대학교 -1

2016/05/30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6) 국립 홋카이도 대학교 -2

2016/06/01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7) 국립 홋카이도 대학교 -3, 오타루(小樽)를 향하여

2016/06/08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8) 오타루(小樽)역, 운하를 향하여

2016/06/13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9) 오타루(小樽) 운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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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가쿠 앞 버스주차장.


일본 현지인 관광객들도 있었습니다만. 중국쪽에서 온 관광객들이 꽤나 많이 보였는데, 아무래도 버스를 타고 단체로 온 관광객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버스주차장 옆. 고로가쿠 입구 바로 앞에는 절이 하나 있습니다.


최상사(最上寺)라는 이름을 가진 이 절은, 뭐 우리내 사찰처럼 부처님을 모시는 그런 사찰이긴 합니다만 실내 납골당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걸로 보입니다. 뭐 절은 절이지만 추모공원에 가까운 절이겠지요.



조용한 분위기를 가진 사찰입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벚꽃이 피면 상당히 아름답더군요.


뭐 고로가쿠 근처도 다 오랜 세월을 버텨온 벚나무들로 둘러쌓여있고, 그 근처로도 벚나무가 상당히 많으니 한 1~2주만 늦게 왔더라면 벚꽃이 핀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을겁니다.



상당히 굵은 나무기둥이 이리휘고 저리 휘어있네요. 조금만 늦게 올 걸 싶습니다.



하코다테 전쟁과 특별사적 고로가쿠 터


고로가쿠는 간단히 말해 별모양의 요새입니다. 1854년 체결된 미일 화친 조약에 따라 하코다테 항이 미국에 개항되었고, 당시 혹시모를 유사시를 대비해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사다의 명령으로 축조되었다고 합니다. 1854년에 착공하여 약 9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되었고, 정작 미국과의 전쟁 없이 에도막부와 지금의 일본 천왕 세력간의 내전인 보신 전쟁(하코다테 전쟁) 당시 최후의 격전지로 알려졌습니다.



평화로운 출입구. 꽃이 피어있다면 정말 카와이하고 아름다울텐데 아쉽기만 합니다.



그냥 멀리 쳐다봐도 예술입니다. 



고로가쿠의 전반적인 지도입니다. 


강물이 요새를 한바퀴 휘돌아 지나가고, 한가운데에는 건물들이 있습니다. 축조 당시 행정집행소를 비롯한 행정기관들이 이 요새 안에 지어졌는데, 현재는 대다수의 건물이 해체되어 집터만 남아있습니다. 다만, 중앙의 가장 큰 건물인 행정집행소는 최근에 와서 복원되었다고 하는군요.



그냥 이쁩니다. 지금 가면 풀도 나뭇잎도 다 나서 허전한 모습은 아니겠지요.


개인적으로 벚꽃이 피는 시기에 다시 와보고 싶습니다. 꽃잎이 강물에 날리는 그 모습을 보고싶어요.



성곽의 끄트머리 부분은 흙더미가 보일 뿐.



성곽 위로 올라가서 입구방향을 바라봅니다. 관광객들이 다리를 건너 성곽 안으로 들어오는군요.



성곽 위로 쭉 돌아서 들어가고 싶지만, 이 입구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니 성곽에서 내려옵니다.



뭐 지금쯤 방문한다면 등나무 그늘이 정말 아름답겠죠.



지금 기술로는 그냥 식은 죽 먹기 급인 토목공사입니다만, 당시 기술로는 꽤 힘든 공사였을겁니다.


어떤 방법으로 축조되었는지, 비록 일어와 영어 설명뿐이 없지만 대강 이해는 할 수 있었습니다. 수심이 그리 깊어보이진 않던데 1.8m나 되는군요.



다시 또 올라갑니다. 다른 관광객들은 다이렉트로 들어갑니다만, 저는 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훨씬 더 보기 좋더군요. 그럼에도 저 말고는 딱히 올라가서 전망을 바라보는 관광객은 없었답니다.



그냥 이런 모습이 좋아서 한참을 올라가서 사진을 담고 내려왔습니다.



할머니 관광객들이 넘쳐납니다. 


저 뒤로 보이는 웅장한 일본식 고건축물이 옛 행정집행소. 현재는 봉행소 건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아주머니들을 따라서 일단 작은 건물 방향으로 향해봅니다. 



고료가쿠 성을 축조한 건축가 다케다 아야사부로(武田斐三郞)의 흉상이 한켠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유럽의 축조양식을 기반으로 당시에는 요새를 목적으로 축조했지만, 백년이 지난 오늘날 지역민들에게 세계적인 자랑이자 세계인이 찾는 관광지를 만든 그의 능력에 경의를 표하고 갑니다.



전쟁 당시 사용되었던 대포와 포탄입니다. 


천왕세력이던 정부군은 큰 대포를, 막부세력은 작은 대포를 사용했다고 하는군요. 포탄의 크기 그리고 스펙 역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의외로 존재감이 없어보이는 기념품 판매점 및 매점.



봉양관으로 쓰이는 건물의 입장료는 500엔입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더군요. 막상 신발을 멋고 맨발로 들어가긴 뭐하고, 현지인 아주머니들만 들어가기에 패스했습니다.



봉양관 옆으로도 커다란 건물의 터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복원된 건물은 극 소수. 이렇게 건물 터로나마 옛시절의 영광을 회상해 봅니다.



까마귀와 까마귀를 쫒는 카와이한 스시녀.


쫒으려고 그러는게 아니라 카와이한 까마귀 사진을 찍어가겠다고 핸드폰을 들고 가는데 우리의 까마귀들은 그저 도망을 갈 뿐 입니다.



하다하다 창고등의 목적으로 쓰이던 작은 건물의 터까지도 이렇게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저기 아저씨들은 대체 무슨 사진을 찍으시길래 저러고들 계신걸까요..



성벽 틈새로 작은 돌맹이들을 끼워놓았네요. 다시 성곽을 타고 돌기로 합니다.



꽃몽우리가 맺히기 시작했지만 뭐 이파리도 꽃도 보이지 않으니 그저 황량합니다.


100여년의 세월을 견더온 나무도 모여있으니 무서워 보이는군요.



딱 봐도 벚나무 가지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는 목계단입니다.


뭐 나무가 큼직하니 가지치기를 해줘도 목계단을 만들 수 있는 굵은 가지들이 꽤나 나오겠지요.



아무도 없는 성곽을 한바퀴 돌아봅니다.


바람은 매섭게 불고, 카와이한 처자도 카와이한 무언가도 없습니다. 그저 혼자 걷습니다.



쭉 거닐다보니 민가만 없을 뿐이지 순천의 낙안읍성 느낌도 납니다.



고로가쿠성을 한바퀴 돌고 후문으로 나옵니다.


잘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문 밖으로 나갑니다.



그저 평화로울 뿐. 정문 근처에 비해서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선사해 줍니다.


사실상 주택가이다보니 평화로운 월요일 오후에 넓은 성곽을 따라 조깅 혹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꽤나 보이더군요. 관광지에 걸친 주택가 치고는 상당히 조용했습니다.



트럭 한 대가 다리를 건너가는군요. 우체국 배달차량입니다.


봉양소 혹은 관리사무소로 들어가는 우편물과 소포를 싣고 달려가는군요. 고료가쿠 공원을 빠져나와 성 외곽으로 돌아서 다시 시내로 나가보기로 합니다.


30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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